양평 용문사 천년 은행나무 아래 서린 역사

천년 왕조 신라가 고려에 귀속되던 해, 왕위를 눈앞에 두고도 나라를 잃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신라 제56대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입니다. 나라를 자진해 고려에 넘기려는 아버지의 결정에 반대하며, 그는 백성을 지키기보다는 신라의 자존을 지켜야 한다며 끝까지 반대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고려 수도 개경으로 향하는 신라 마지막 왕의 행렬을 떠나보낸 마의태자는 눈물을 훔치며 홀로 금강산을 향해 떠났다고 합니다.

그가 지나쳤다는 전설이 남은 곳 중 하나가 바로 경기도 양평입니다. 왜 동해안을 따라 금강산으로 가지 않고 양평까지 들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곳에서 한 그루의 나무를 심고 떠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마의태자의 비통한 마음이 서린 그 나무, 바로 용문사 은행나무입니다.

천년을 살아낸 은행나무의 기운

용문사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바로 이 은행나무입니다.

높이 60m, 둘레 12m에 달하는 이 나무는 수령이 1,100년에서 1,300년으로 추정되며, 동양 전체를 통틀어도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 중 하나입니다. 신라가 멸망한 해가 서기 935년이니, 마의태자가 이곳에 은행나무 씨앗을 심었다는 전설과도 시기가 맞물립니다.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의상대사가 지팡이를 꽂았더니 자라났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나무는 천 살이 넘은 지금도 해마다 은행 열매를 5석가량 맺습니다. 단순히 오래되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여러 차례 나라에 큰 일이 닥칠 때마다 신기한 현상이 일어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더욱 영험하게 여겨집니다.

1907년 정미의병 때 일본군이 용문사에 불을 지르려 했지만 이 나무만은 불길을 피했다는 일화나, 어떤 이가 나무에 톱질을 하려다 나무에서 피가 나왔다는 전설이 대표적입니다.

사찰의 역사와 ‘용문’의 의미

용문사는 ‘용의 문’이라는 이름을 가졌습니다. 중국 황하에서 잉어가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면 용이 된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로, 인생의 중요한 시험이나 관문을 상징합니다. 그만큼 이곳은 오랜 시간 동안 영적 수련과 역사의 흐름을 간직한 공간입니다.

조선 세종 시대에는 수양대군이 어머니 소헌왕후를 위해 대대적으로 중창했으며, 은행나무에는 당상관 벼슬을 내렸다는 기록도 전해집니다. 오늘날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으며, 매년 많은 사람들이 이 나무 아래에서 소원을 빌고 마음을 다잡는 시간을 갖습니다.

쉼과 명상을 위한 템플스테이

용문사는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사찰 체험과 명상을 통해 마음의 쉼표를 찍을 수 있는 공간으로도 운영됩니다.

템플스테이는 주말-체험형과 휴식형으로 나뉘며, 사찰 예절, 타종, 명상, 예불, 스님과의 차담, 요가, 단주 만들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어 일상에서 벗어나 내면을 들여다보기에 좋은 기회를 제공합니다. 특히 새벽 도량석과 아침 예불 후 텅 빈 경내를 걷는 시간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곤 합니다.

서울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 단풍이 물드는 계절이면 더욱 고요하고 아름다운 길. 천년 고찰을 둘러본 뒤, 고목 앞에 앉아 마의태자의 한을 떠올리고 조용히 기도해보는 것도 이곳에서만 가능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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